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(문단 편집) === 윤태식의 활동과 윤태식 게이트의 서막 === 이후에 안기부 직원들과 친분을 맺었는지 윤태식을 감시만 했고 윤태식은 아내의 죽음과 관련해 구속조치 같은 건 받지도 않은 채 사기 행각을 일삼다가 형사 처벌을 받으면서도 안기부의 묵인과 도움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면서 살고 있었다. 윤태식은 자금을 마련해 영화 배급 사업에 손을 댔다가 쫄딱 망한 뒤 본인 회사의 직원들이나 주변 여자들을 통해 얻은 회사원 20명 등의 신분증, 재직증명서를 위조해 [[http://weekly.donga.com/List/3/all/11/67401/1|신용카드 수십 장을 발급받아 5개월 동안 수억 원을 사용해 오다 94년부터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]] 하였다.[* 이마저 윤태식은 안기부 감시를 피해 일부러 감옥에 들어간 것이라 주장했다.] 또한 이 밖에도 중국산 위폐개수기를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속여 금융기관에 납품될 제품의 공급권을 주겠다며 돈을 빌려 가로채거나 중국 푸둥지구에 건설 사업을 따게 해 주겠다고 했다가 흐지부지되어 사기 혐의를 받는 등 사기 행각을 지속해 왔다. 적발되어도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재기했다. 1996년 7월에 출소한 윤태식은 교도소 수감 시절 알게 된 교도소 동료로부터 지문인식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를 소개받아 동업을 하게 된다. 또한 윤태식은 이 동료로부터 모 언론사 사장 부부를 소개받아 이들을 끌어들여 이전 동업자와 결별하고 1998년에 ‘패스21’이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. 패스21의 초기 자본은 이들 부부 중 웨딩, 가구 관련 사업을 하던 부인이 대부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두 아들 역시 패스21의 감사와 이사를 지내는 등 이들은 패스21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. 또한 윤태식은 위에서 언급된 교도소 동료로부터 역시 김모 전 국회의원을 소개받았고 그를 통해 정관계 로비를 진했다. 오랜 기자 생활로 정관계에 발이 넓었고 언론사 사장이던 김모 사장과 전 국회의원의 비호를 통해 윤태식의 패스21은 재경부 장관을 지낸 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하기도 했으며, 정통부 장관은 물론 [[김대중]] 대통령에게도 기술 설명을 하는 등 승승장구했다. 이러한 로비와 더불어 90년대 후반 불어닥쳤던 벤처 열풍으로 인해 패스21의 장외 주식은 15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를 오르내리며 윤태식은 장부상 수백억 원 대의 부자가 되었다. 심지어 김모 사장이 고교 동창인 [[이종찬(1936)|이종찬]] 당시 국정원장에게 부탁해 윤태식은 국정원 내에서 기술시연회를 열기도 했다.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윤태식은 주목받는 사업가로 아침 방송에도 출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